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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

김중훈 2010. 9. 12. 22:42

 빈곤이 개인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면, 그는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더욱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농자 개인들은 더욱 노력해도 적은 임금 때문에 그 빈곤에서벗어나기 어렵다. 사회 구조적으로 개인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또한 그 빈곤이 대대로 세습된다면 그 사회는 좋은 곳이 아닐 터이다.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그러한 사회 구조적 빈곤과 빈곤의 세습 문제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이 책은 웬만한 사회학 서적보다 더 빈곤의 문제를 매우 현실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 소설은 12편으로 된 연작 소설로 1970년대 산업화에 밀려난 도시 빈민들의 궁핍한 삶과 한을 그리고 있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이 소설은 뫼비우스의 띠로 설명하고 있다. 수학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고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어느 쪽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수학 교사의 답은 엉뚱했다. 똑같은 굴뚝에 들어가 청소를 하고 나왔는데, 한 아이의 얼굴은 깨끗한데 다른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사회라는 같은 굴뚝 안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곳이 천국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곳이 지옥이다. 난쟁이 가족 중 어머니와 장남인 영수, 둘째 아들 영호, 여동생 영희가 함께 개천 근처를 걷다가 개천 건너 주택가에서 나는 고기 굽는 냄새를 맞게 된다.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세상 안에는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부자들이 있고, 반면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없는 빈민들이 있다. 수학 교사의 표현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난쟁이 가족이 도시 빈민이 된 것은 가장인 아버지의 천성이 게으르거나 어머니 혹은 아이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영수나 영호 역시 공장에 다닌다. 그러나 현실은 철거민이다.

 

 아버지는 그 동안 충분히 일했다. 고생도 충분히 했다. 아버지만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 아버지의 조상은 노비였다. 어머니의 조상도 노비였다. 노비는 상속, 매매 기증, 공출의 대상이었다. 주인의 소유물이었다. 이 가족들이 그동안 살았던 무허가 집은 마련하는데 천 년이 걸렸던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그 집이 지금 철거 위기에 처해졌다. 결국 난쟁이는 공장 굴뚝에 올라가 자살하고 만다.

 사회 구조의 모순은, 아무리 개인이 발버둥쳐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장남 영수는 공장을 전전하다가 노동 운동에 뛰어들어 은강 그룹 회장의 동생을 죽이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동생 영호 역시 형을 따라 공장을 전전한다. 여동생 영희는 자기네 입주권을 사 간 부자 사내에게 자신의 순결을 빼앗기고 입주권을 몰래 훔쳐 온다. 이 난쟁이 가족의 삶은 소외된 도시 빈민의 당면 현실이 어떠한가를 매우 전형적으로 보여 주며, 우리 사회 구조의 모순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매우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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