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 중에 윈프리는 탐 설리반이라는 시각장애인 사업가와 인터뷰를 인용했다. 설리반은 절망과 자괴감에 빠졌던 자기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말은 단 세 단어였다고 했다. 어렸을 때 혼자 놀고 있는 그에게 옆집 아이가 "같이 놀래?(want to play?)"라고 물었고, 그 말이야말로 자신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해 주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고 했다.
이에 슈라이버는 "같이 놀래?"는 자기가 쓴 모든 작품의 주제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아이들이 서로 '다름'을 극복하고 함께 하나가 되어 '같이 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작품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었다.
(p. 5)
문학은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체험, 또는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허구적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일어날 법한 얘기를 창조해서 말한다. 그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현실에 얼마든지 있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고 분명 남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문학작품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중 인물들을 통해서 내가 표출하지 못했던, 아니 내 안에 있는 것조차 까마득하게 몰랐던 욕망, 분노, 고뇌, 사랑을 맞닥뜨리게 된다. 등장인물이 아무리 괴팍하고 비현실적인 행동을 한다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갖는 약점, 페이소스, 슬픔과 좌절을 깨닫고 그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하는 내적 세계에 눈뜨게 한다.
그래서 문학은 일종의 대리 경험이다. 시간적, 공간적, 상황적 한계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경험을 다 하고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삶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시행착오 끝에 '어떻게 살아가는가', '나는 누구이며 어떤 목표를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문학을 통해 우리는 삶의 치열한 고통, 환희, 열정 들을 느끼고 감동한다. 정신적으로 자라나고 삶에 눈뜬다는 것은 때로는 아픈 경험이지만 이 세상을 의미 있께 살다 가기 위해서는 꼭 겪어야 할 통과의례이다.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뇌를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 그에게 동정을 느끼고 "같이 놀래?"라고 말하며 손을 뻗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같고,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러한 인간 이해는 필수조건이다.
(p. 6)
지난 수시 입학 전형 때 어느 학생에게 "문학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잠깐 생각하더니 그 학생은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답했다. 그 어느 두꺼운 문학 이론책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다.
(p. 10)
릴케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어느 시인 지망생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그의 사랑에 관한 정의이다.
"우리는 어려운 것에 집착해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 자신의 고유함을 지닐 수 있습니다. 고독한 것은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아마도 내가 알기에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고 다른 모든 행위는 그 준비 과정에 불과합니다. 젊은이들은 모든 일에 초보자이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상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배워야 합니다. 모든 존재를 바쳐 외롭고 수줍고 두근대는 가슴으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초기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과 합일, 조화가 아닙니다. 사랑은 우선 홀로 성숙해지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p. 20)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를 사랑한 개츠비의 삶은 결국 가엾고 허무한 것이었다. 그러나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 학생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속성을 개츠비에게서 찾아볼 수는 없다. 그는 결국 돈 때문에 떠나간 사랑을 돈으로 찾겠다는 단세포적 발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불법축재자였으며, 이미 흘러간 과거를 되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한 비현실적 몽상가였고, 사랑의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유아적 낭만주의가였을 뿐, 결코 '위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피츠제럴드는 책의 첫 부분에서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갖다 붙인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그것은 바로 게츠비가 암담한 현실 속에서 "아무리 미미해도 삶 속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사랑에 실패해도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즉 언제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낭만적 준비성', 그리고 "삶의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920년대 혼돈의 시대, 미래에 대한 이상을 찾는 '아메리카 드림'이 순수함과 낭만을 잃어버리고 물질만능주의와 퇴폐주의로 타락해 가는 시대에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의 꿈과 희망을 하나의 '위대함'으로 보았던 것이다.
(p. 64)
작가들의 유언 중 가장 유명한 말은 괴테의 "좀더 빛을"이라는 말일 것이다.
(p. 83)
죽어가는 그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그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다고 흐느끼는 이자벨에게 랠프는 말한다.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남지. 그걸 모르고 왜 우리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삶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고, 그리고 너는 아직 젊어..."
'너무나 많은 것이 있는' 삶, 사랑이 있는 삶을 나는 매일 쓸데없는 말,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 진실이 아닌 말로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큰 고통이라 할지라도 고통은 결국 사라지지만,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내가 사라져 버린 후에도 이 지상에 남을 수 있는 사랑을 만들기 위해 오늘 무슨 말, 무슨 일을 할까.
(p. 85)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묘비문은 언젠가 아버지가 쪽지에 적어 놓으셨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어느 성공회 주교의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마지막 시도로,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p. 103)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이제는 줄거리조차 희미한 작품이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교실로 쓰는 교회 건물이 좁고 낡았으니 학생을 80명만 받으라는 주재소의 명령에 따라 영신은 배움에 굶주린 학생들을 억지로 내쫓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 영신은 깜짝 놀란다. 쫓겨난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담에 매달려 있는가 하면, 나무에 올라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감격한 영신은 아예 칠판을 밖으로 옮긴다. 그리고 칠판에 커다랗게 적는다.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p. 107)
하지만 햇빛 눈부신 이 가을날 오후, 어쩌면 돈키호테처럼 잡을 수 없는 별에 손을 뻗치고, 순수하고 정결한 것을 사랑하고,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끊임없이 꾸는 '광인'의 삶이 차라리 행복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이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미련이 너무 커서 "아무리 조롱 당하고 상처 입어도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노력한다면 이 세상 좋아지리..."라는 돈키호테의 믿음을 완전히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p. 119)
사실 유명한 정치가들은 그들의 탁월한 정치적 수완뿐만 아니라 유머 감각으로도 유명하다. 한 번은 처칠을 끔찍이 싫어하던 영국의 여성 국회의원 레이디 에스터가 한껏 화가 나서 처칠에게 "당신이 내 남편이었다면 당신 커피에 독을 탔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처칠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내가 당신 남편이었다면 서슴지 않고 그걸 마셨을 것이요."
(p. 121)
워즈워스는 낭만주의의 효시가 된 그의 유명한 시집 <서정시집, 1798>의 서문에서 시인을 정의한다. "시인이란 인간의 본성을 지키는 바위 같은 존재이다. 그는 지지자요 보호자이고, 어디를 가든 정과 사랑을 지닌 사람이다" 라고.
(p. 148)
그런데 이렇게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훌륭한 수필가들의 작품들보다도 내가 더 인상 깊게 읽은 수필은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가>가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한 이 글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헬렌 켈러의 작품이다.
(p. 151)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쓴 보마르셰는 묻는다. "사랑과 평화가 한 가슴속에 공존할 수 있는가? 청춘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은 이 끔찍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 없는 사랑, 사랑 없는 평화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나는 네가 사랑 없는 평화보다는 평화가 없어도 사랑하는 삶을 선택해 주기를 바란다. 새뮤얼 버틀러가 말한 것처럼 "살아가는 일은 결국 사랑하는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 155)
꿈을 가져라. 네가 갖고 있는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설사 1%뿐이라고 해도 꿈을 가져라. "불가능을 꿈꾸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는 괴테의 말을 되새겨라.
(p. 156)
지난 2003년 3월 28일 전북 부안 새만금 갯벌을 떠난 삼보일배 순례단은 305km, 세 시간 만에 올 수 있는 길을 죽음 같은 고행으로 65일 만에 서울에 들어왔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 수경 스님은 '발로 참회를 시작하며' 라는 글을 썼다.
"산은 아스팔트의 이름으로 죽어 그대로 거대한 무덤이 되고, 강물은 댐의 이름으로 썩어 수장이 되고, 갯벌은 매립의 이름으로 죽어 뭇 생명들의 거대한 공동묘지가 됩니다. 도대체 이 땅에 누가 있어 상극과 공멸의 광풍을 잠재우고 상생과 생명 평화의 장을 만들겠습니까.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경>의 진리는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며 '너는 나의 뿌리이며, 나 또한 너의 뿌리'인 <화엄경>의 연기론은 또 지금 바로 여기가 아닌 그 어느 곳에 있어야 하겠습니까."
(p. 194)
<변신>은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현대문명 속에서 '기능'으로만 평가되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고 서로 유리된 채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그레고르가 생활비를 버는 동안에는 그의 기능과 존재가 인정되지만 그의 빈자리는 곧 채워지고 그의 존재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인간 상호 간은 물론, 하물며 가족 간의 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프라하 유대인 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하고 스물다섯 살 되던 해부터 일생을 보험국 관리로 일했다. 기계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생활에 매여 오직 밤에만 글을 쓸 수 있었지만, 결국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 직업을 떠나지 못했다. <변신>은 어쩌면 그가 일생을 통해 느꼈던 철저한 소외와 고립감을 묘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헨리 8세의 왕비였던 앤 여왕이 부정의 누명을 쓰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아 오월이군요!"였다. 햇볕이 너무 밝아서, 바람이 너무 향기로워서, 나뭇잎이 너무 푸르러서, 꽃이 너무 흐드러져서, 그래서 세상살이가 더욱 암울하고 버겁게 느껴지는 이 아름다운 오월. 새삼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본능으로 사는 벌레가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변신'을 꿈꿔본다.
(p. 217)
별들이 드리운 밤을 눈앞에 보며,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 알베르 카뮈
(p. 234)
카뮈는 영역본 서문에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이 사회에서 사형을 선고 받을 위험성이 있다"고 말한다. 사회의 대다수가 따르는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즉 때로 자신을 숨기는 연극을 하지 않으면, 그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뫼르소는 적어도 자신을 포기하는 연기를 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는 끝까지 사회에서 추방 당하는 이방인으로 남는다.
카뮈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열 개의 단어로 '세계, 고뇌,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가난의 고통, 여름, 바다'를 꼽았다. '가난의 고통'이나 '고뇌'가 들어간 것은 의외지만, 무감각하고 습관적인 삶보다는 잠자는 의식을 깨우는 치열한 고통과 고뇌가 있는 삶이 더 낫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늘이 활짝 열리며 불을 뿜는" 더위의 고통을 겪어야 청명하고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음과 같을까...
(p. 259)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어떤 종류이든 인호나 나처럼 지금 글을 써야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미국의 수필가 J.B. 프리스틀리의 지혜를 나누고 싶다.
"애당초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꼭 써야 한다면 무조건 써라. 재미없고, 골치 아프고, 아무도 읽어 주지 않아도 그래도 써라.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고, 남들이 다 온다는 그 '영감'이라는 것이 오지 않아도 그래도 써라. 기분이 좋든 나쁘든 책상에 가서 그 얼음같이 냉혹한 백지의 도전을 받아들여라."
(p. 305)
그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에서 윌리엄 포크너는 말했었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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