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발도 하고, 어머니 집에 들러 고구마도 하나 먹고, 국 부장님 축구장에 가서 추운 날씨에 땀 흘리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오히려 뭔가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니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정돈 안 된 식탁, 강아지 오줌이 여기 저기 뭍어 있고.
서현이는 역시 교복도 안 벗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질, 민석이는 몇 시간째인지 모르는 티비.
이혼 후에 나 혼자 아이들 온전히 돌볼 수 없을 것이란 건 당연히 예상했었지만,
너무나 흐트러지고 있는 나와, 그리고 서현이, 민석이를 보는 것이.
그것이 짜증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결국 이것도 이정선에 대한 짜증이고, 화란 얘기.
결혼하고, 애 낳고, 집 안일 하다보면 결혼 전의 환상은 사라지고, 현실만이 눈 앞에 서 있을 뿐이다.
육아에 지치고, 집안 일에 힘들고, 아이들은 생각대로 크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눈물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때 강릉에 있을 때 이정선은 전화로 많이 울었었다.
소리내어 울었었다.
그때 내가 할 일은 잠깐의 위로가 아니라 태도의 변화였다.
영국 출신 연예인 에바는 한국인과 결혼했는데 그 남편은 에바가 결혼 전에는 애교가 많은 여자라고 했다.
지금은 남자 애 둘 키우느라 애교가 다 없어져 싸움이 잦다고도 했다.
그 년놈도 애 낳고 '생활'이라는 걸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