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베르트의 미소짓는 표정, 그녀가 대접하는 고급스러운 차, 그리고 그녀의 따뜻한 태도는 결국에는 그의 삶에 매우 익숙한 요소가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나무, 구름 또는 전화와 같이 흔한 요소들 만큼이나 주목할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사물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눈으로 그것을 다시 그려 볼 것도 요구한다.
무언가를 박탈당했을때 우리는 그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의 매력보다 "아뇨. 오늘 저녁에는 시간이 없어요. "와 같은 말이 더 빈번히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저녁 식사를 퇴짜 놓는 것은 바다위에서 40일을 지내게 하는 것과 맞먹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저항하고, 즉시 소유할 수 없으며, 앞으로 소유할 수 있을지조차 처음에 알 수 없는 여성들만이 유일하게 흥미를 끄는 사람들이다.
창녀는 프루스트의 욕망이론 안에서 불행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남자를 유혹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상업적인 이유로 사랑의 감정을 가장 자극할 수 있는 행위, 즉 오늘 밤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만약 창녀들이 우리를 거의 매혹시키지 못한다면, 그들이 다른 여자들보다 덜 아름다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준비 상태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이미 그들이 정확히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소유가 너무 쉬우면, 프루스트의 관점에서 볼 때 유효한 단 하나의 실제적 소유 형태인 상상 속의 소유를 추구하지 않고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게 된다. 이 상상 속의 소유는 물리적 접촉을 거부당했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질투심을 불어넣는 것이 습관에 의해 퇴락한 관계를 구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들은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누군가를 욕망하고
뾰족한 엄니로 키스하고, 권태감에 빠진다. 누군가 관계의 지속을 위태롭게 하면, 그들은 질투에 빠져 잠시 동안은 깨어나지만 뾰족한 엄니로 또 한번 키스를 하고는 또 한번 권태감에 빠진다.
그녀를 잃을까봐 두려워할 때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을 잊어버린다. 그녀가 자기 것이라고 확신할 때 우리는 그녀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고, 즉시 그녀보다 그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 p22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