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flies
110쪽
랠프는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 한 가닥의 굳건한 모래사장을 골라잡고 걸어갔다. 발길을 지켜보지 않고서도 걸어갈 수 있는 곳은 기기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가를 걸어가다가 홀연 깨달아지는 바가 있어 그는 놀랐따. 이승의 따분함을 깨우친 것 같았다. 이스에서의 모든 도정(道程)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며, 세상살이의 태반은 발걸음을 조심하는데 보내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13쪽
「너는 참 바보야」하고 <파리대왕>은 말하였다. 「넌 정말 바보 같은 애라고 스스로 생각지 않니?」사이먼은 <파리대왕>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다쳐도」하고 <파리대왕>은 말하였다. 「넌 여길 벗어나서 딴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게 좋아. 그들은 너의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랠프가 네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하길 바라지는 않겠지? 너는 랠프를 퍽 좋아하지? 그리고 돼지와 잭도?」
사이먼은 고개를 약간 뒤로 쳐들었다. 눈은 아무리 해도 딴데로 돌릴 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파리대왕>이 매달려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넌 여기서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넌 내가 무섭지 않으냐?」
사이먼은 고개를 저었다.
「너를 도와줄 사람은 이곳엔 아무도 없어. 오직 내가 있을뿐이야. 그런데 나는 <짐승>이야」
사이먼의 입이 한참 애를 쓰더니 똑똑한 말소리가 새아나갔다.
「막대 위에 꽂힌 암퇘지머리야」
「나 같은 짐승을 너희들이 사냥을 해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참 가소로운 일이야!」하고 그 돼지머리는 말하였다. 그러자 순간 숲과 흐릿하게 식별할 수 있는 장소들이 웃음소리를 흉내내듯 하면서 메아리쳤다.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분이란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
웃음소리가 다시 떨리며 메아리쳤다.
「자」하고 <파리대왕>은 말하였다. 「딴 아이들에게로 돌아가. 그러면 우린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돼」
사이먼의 머리가 흔들흔들하였다. 막대 위에 꽂혀 있는 더러운 것을 흉내내듯 사이먼의 두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그는 예의 골치 아픈 때가 닥쳐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리대왕>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이건 정말 어이없는 짓이야. 저 아래쪽에서도 나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넌 잘 알고 있어. 그러니 도망치려고 할 거 없어!」
사이먼의 몸은 빳빳하게 휘었다. <파리대왕>은 교장선생님 같은 말씨로 말하였다.
「이것은 너무 지나쳤어. 버릇없는 아이야, 너는 나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니?」
잠시 아무 소리도 없었다.
「난 너희들에게 경고해 둔다. 나는 조금 화가 나 있어. 알겠니? 너희들은 이곳에 소용없는 친구들이야. 알겠니? 우리는 이 섬에서 재미있게 지내려고 해! 그러니 버릇없는 아이야, 속이려 덤벼들지 마! 그렇지 않으면......」
사이먼은 자기가 거대한 아가리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 속은 새까맸다. 점점 퍼져가는 암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하고 <파리대왕>은 말하였다. 「우리는 너희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을 거야. 알겠어? 잭도 로저도 모리스도 로버트도 빌도 돼지도 랠프도. 너희들 모두. 알겠어?」
사이먼은 그 아가리 속으로 삼켜져 들어갔다. 그는 쓰러져서 의식을 잃었다.